'마녀사냥'과 '상대종파 박해'의 관련성에 대해서 토론 신청합니다.

#1 Jibril_Lee2017-09-10 01:18:14

현재 이 문서의 경우 두가지 관점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1. 마녀사냥과 '상대종파 박해'는 별개의 사건이며,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 양쪽 모두 상대방을 마술 혐의로는 거의 고발하지 않았다. 마녀사냥에서 상대방 종파를 박해했다는 것은 오역이며, 상대 종파를 박해한 것은 '이단심문'이다. (근거: Peter Marshall의 저서 「종교개혁」.)

2. 마녀사냥에서 상대방 종파는 마술 혐의로 고발되었다.(근거: Paul Johnson의 「기독교의 역사」)

저는 1번에 근거하여 문서를 편집했는데, 2번을 근거로 한 반대자 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자책으로 폴 존슨의 저서를 확인해보니, 2번의 근거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아니라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두개의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5부의 '마녀사냥'이라는 소제목으로 기술되어있습니다.

정통주의를 고수했던 스페인에서는 누구보다도 무어인과 유대인, 프로테스탄트들과 피가 섞인 '불순한 혈통'들이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피레네 산맥 북쪽으로 넘어가면 박해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은 그곳으로 피신했다. 이에 대해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이들을 마녀라고 부르고 맹렬하게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어원문의 pdf파일을 구해서 읽어보니 번역에 문제가 있었습니다.(아래는 제가 직역한 것입니다)

pdf 주소
http://cnqzu.com/library/Philosophy/neoreaction/_extra%20authors/Johnson,%20Paul/A%20History%20Of%20Christianity.pdf

While in Spain orthodox intolerance concentrated on Moors and Jews, and then on an amalgamation of Jews, Protestants, foreigners and those of 'impure blood', north of the Pyrenees Jews had ceased to be the main object of hatred in the thirteenth century, and attention had focused on those heretics who fled into mountain areas to escape persecution. Almost imperceptibly, in these remote and backward areas, the heresy-hunt broadened out into the witch-hunt.
스페인의 정통적 비관용이 무어인, 유대인, 아말감화된 유대인(혼혈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외국인과 '불순한 피'에 집중되는 동안, 피레네 산맥 북쪽의 유대인들은 13세기의 증오(13세기식 증오)의 대상이 아니였다. 그리고 산간지역으로 박해를 피해 달아난 이들의 유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어느샌가, 외진 곳에서, 재산사냥(heresy-hunt)이 마녀사냥 속으로 퍼졌다.


다시말해, 원문에서는 재산사냥이 마녀사냥과 결부된 것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말 역본에서는 마치 유대인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이 진행된 것처럼 오역되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발견한, 2번 주장의 근거가 될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진영 사이의 투쟁이 심화될수록 마녀의 숫자도 늘어났다. 왜냐하면 마녀사냥꾼들은 마법을 상대방의 신앙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마녀사냥도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프로테스탄트와 유대인'을 결부시켰다.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간 문장을 번역자가 빼먹었는지, 해당되는 문장만 굵게 표시했습니다)

There seems to have been a fairly steady correlation between the intensity of the Protestant-Catholic struggle and the number of witches accused and burned. Just as there had been a lull in the early sixteenth century, ended by the Lutheran Reformation and its violent consequences, so there was another lull just before the outbreak of the Thirty Years War in 1618. Then, with the Catholic reconquest of Bohemia and parts of Germany, the witch-trials multiplied. This last great phase of witchhunting was the product of Catholic-Protestant rivalry, since hunters on both sides often identified witchcraft with opposing beliefs; on the other hand, they drew on each other's theoretical writings and practical experiences. The Catholic witchcraft terror in Germany was remarkably like the Inquisition's 'Protestant-Jewish' terror in Spain, since it might strike at anyone.

프로테스탄트-가톨릭의 투쟁이 심화될수록 고발되고 불태워지는 마녀의 수가 늘어났다. ······ 마녀사냥의 마지막 절정기는 가톨릭-프로테스탄트 경쟁 의식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양측의 사냥꾼들은 자주 마녀들이 반(反)신앙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은 각각의 신학적 저술과 실천적 경험들을 그려냈다. 독일 가톨릭의 마녀사냥 테러는 두드러지게 스페인에서의 프로테스탄트-유대인 종교재판 테러와 유사했다. 왜냐하면 누가 당할지 모르니까.


보시다시피 역본에서는 마치 독일에서든 스페인에서든 마녀사냥 대상에 프로테스탄트가 들어간 것처럼 번역되었지만, 원문에서는 스페인식 프로테스탄트-유대인 종교재판과 독일식 마녀사냥이 비슷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여기에는 독일에서든 스페인에서든 프로테스탄트를 마술 혐의로 죽였다는 말이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제가 인용한 Marshall의 저서도 원문을 확인해봤습니다. 이것은 원문을 pdf파일로 찾을 수 없어서, 구글 검색으로 전자책 미리보기로 확인한 것입니다. 이메일 주소 남겨주시면 해당 미리보기에서 캡처한 것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위는 역본, 아래는 원본입니다.

가톨릭교와 신교는 과격한 종교적 수사법을 곧잘 구사하면서도 좀처럼 서로를 마녀술 혐의로 고발하지 않았다. 마녀들의 주된 죄목과 종교개혁의 주요 논쟁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In spite of often extreme religious rhetoric, Catholics and Protestants generally did not accuse each other of witchcraft. Nor was the principal charge against witches directly linked to major Reformation controversies.


따라서 종합적으로 검토할때, 저는 1번의 편집방향이 훨씬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해서 말씀드리자면, 저와 수정분쟁을 겪으신 분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원문과 역본을 확인해가며, 건설적 토론이 되기를 바랍니다.

#2 Jibril_Lee2017-09-10 02:18:16

번역 수정: (저도 잠깐 오역을... 부끄럽네요. 재산X 이단O)

역본
정통주의를 고수했던 스페인에서는 누구보다도 무어인과 유대인, 프로테스탄트들과 피가 섞인 '불순한 혈통'들이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피레네 산맥 북쪽으로 넘어가면 박해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은 그곳으로 피신했다. 이에 대해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이들을 마녀라고 부르고 맹렬하게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중세 초기만 해도 이러한 마녀사냥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녀라는 개념이 이방인들의 미신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었다.

원문
While in Spain orthodox intolerance concentrated on Moors and Jews, and then on an amalgamation of Jews, Protestants, foreigners and those of 'impure blood', north of the Pyrenees Jews had ceased to be the main object of hatred in the thirteenth century, and attention had focused on those heretics who fled into mountain areas to escape persecution. Almost imperceptibly, in these remote and backward areas, the heresy-hunt broadened out into the witch-hunt. Witches had not, on the whole, been hunted in the Dark Ages, since belief in their existence tended to be treated as pagan superstition
스페인의 정통적 비관용이 무어인, 유대인, 아말감화된 유대인(혼혈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외국인과 '불순한 피'에 집중되는 동안, 피레네 산맥 북쪽의 유대인들은 13세기의 증오(13세기식 증오)의 대상이 아니였다. 그리고 산간지역으로 박해를 피해 달아난 이단자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어느샌가, 외진 곳에서, 이단사냥(heresy-hunt)이 마녀사냥 속으로 퍼졌다. 마녀는 암흑시대 동안 대체로 사냥당하지 않는데, 그들 존재에 대한 믿음이 이교적 미신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될 부분은 굵게 표시한 부분일텐데, 뒷부분의 문장을 고려해 문맥에 따라 해석해보면 이단사냥의 스타일이 마녀에게 적용되었다는 의미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Marshall의 저서와도 아무런 모순이 없이지기도 하고요.

#3 zephyrus2017-09-10 09:48:30

의견 잘 봤습니다. 먼저 불편을 드린점은 유감입니다. 토론 제안자께서 나무위키 마녀사냥 역주로 저를 구체적으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종종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쓰셨는데 문맥이나 시간흐름상 저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임이 분명했고 내용상 전혀 불필요한 내용인데다가 혼동도 한적이 없기 때문에 약간 불편함도 느꼈고 지웠습니다.

그리고 펠리페 2세의 공식 교서 '마법은 인류의 골칫거리' 내용은 폴 존슨의 저작인지 다른 저작인지 제가 본지 오래되어서 헷갈리지만 분명히 권위 있는 서적에서 본 내용입니다.
해당 서적 오역문제는 처음 듣는데 제가 역자나 출판사가 아닌이상 그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하긴 어려울거 같고요 토론제안자께서 보신 정보로 보아선 이의제기가 일리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두 개념이 완전히 다르고 양상도 전혀 달랐다" 또는 "둘이 혼재 된 시대가 없었다"는 주장은 제안자께서 하시는 주장이고 저는 어느 서적을 봐도 마녀사냥과 이단심문내지 종교재판이 전혀 무관한 개념이라고 서술한 책을 본적이 없습니다.
가장 편하게 찾아볼수 있는 위키디피아 Witch-hunt 항목만봐도 그 주장이 무리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너무 기니 일부 주석만 짧게만 소개하겠습니다.

By the end of the 15th century, scattered trials for witchcraft by both secular and ecclesiastical courts occurred in many places from the Pyrenees, where the Spanish Inquisition had become involved, to the North Sea."

Behringer, "Witches and Witch-hunts: a Global History", pp. 18–19 (2004). Wiley-Blackwell.

#4 Jibril_Lee2017-09-10 13:33:31

#3 토론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펠리페 2세의 교서는 폴 존슨의 저서에서 저도 확인했고, 원문과 대조해보니 딱히 오역도 아닙니다. 다만 책에는 펠리페 2세의 교서가 저지대(흔히 베네룩스라고 하죠)를 대상으로 하였다고 되어있고, 자칫하면 스페인에서는 마녀사냥이 적었다는 정보와 모순된다고 오해될 수도 있으므로, 저지대 대상임을 분명히 하면 오해될 여지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 교서 부분은 남기는게 맞다고 저도 생각합니다.("펠리페 2세가 이러이러한 교서를 남겼고, 따라서 저지대의 마녀사냥이 늘어났다" 같은 서술 말입니다) 편집분쟁 동안 일괄적으로 날아갔는데, 이 부분은 저도 제대로 신경 못쓴점 죄송합니다.

다만 가톨릭-개신교의 신자들이 상대방을 마술 혐의로 고발하지는 않았다는 레퍼런스가 전문 연구자의 서적에서 나온 만큼, 여기에 대하여 레퍼런스 차원의 반박이 없다면 '양자를 마술 혐의로 가발했다'라는 서술은 잘못된 편견 및 고정관념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또한 말씀해주신 위키백과 주석의 경우 해석하자면 "15세기 말에 피레네 곳곳(스페인 종교재판에 연루되었던 지역)에서부터 북해에 이르기까지, 마술에 대한 산발적인 재판이 세속법정과 교회법정에서 모두 일어났다" 정도의 뜻이기에, 양자(가톨릭 신자, 개신교 신자)가 서로를 마술 혐의로 고발했다는 근거로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각주가 붙어있는 본문도, 딱히 양자가 마술 혐의로 서로를 고발했다는 내용이 아니고요.

#5 Jibril_Lee2017-09-10 13:39:48

#4에 덧붙이자면

가톨릭교와 신교는 과격한 종교적 수사법을 곧잘 구사하면서도 좀처럼 서로를 마녀술 혐의로 고발하지 않았다. 마녀들의 주된 죄목과 종교개혁의 주요 논쟁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In spite of often extreme religious rhetoric, Catholics and Protestants generally did not accuse each other of witchcraft. Nor was the principal charge against witches directly linked to major Reformation controversies.


Peter Marshall, 「The Reformation」


이라는 레퍼런스가 있는만큼, 이게 단순히 저 개인의 주장이라고 취급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6 Jibril_Lee2017-09-10 13:56:39

#4에 덧붙이자면

영문 위키피디아의 witch-hunt 문서에서도, 한국어 위키백과의 마녀사냥 문서에서도, 저는 마녀사냥이 가톨릭-개신교 양자에 대한 마술 고발이라는 레퍼런스 있는 정보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저의 부주의함일 수 있으니, 혹시 놓친게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나마 이러한 건덕지로 해석할 수 있는게, 한국어 위키백과의 ".... 그리고 종교 개혁의 열풍과 극심한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를 ‘신앙의 적’으로 몰아갈 필요성이 있었던 교회가 그들이다."라는 서술입니다. 그런데 레퍼런스를 보면 표창원의 칼럼에 쓰인 "...그리고 종교개혁의 열풍과 극심한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를 '신앙의 적'으로 몰아갈 필요성이 있었던 교회가 그들이다"라는 서술입니다. 하지만 표창원은 전문 연구자가 아니고, 그렇다고 해당 서술에서 학계의 문서에 대한 출처를 표시한 것도 아니므로, Marshall에 대한 반박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7 zephyrus2017-09-10 18:49:32

서로 좀 다른 얘기를 하는거 같아서 제목을 다시 봤습니다. "마녀사냥과 상대종파 박해의 관련성" 에 대해서 토론 하고자 하시는데 저는 그 부분에 관해서 그런면도 있었다 알고 있고 이미 두 개념은 언제든지 혼재될 수 있다로 답하겠습니다. 중세적 현상 근세 초기까지 당시 문화나 미신적

풍속과 결합하거나 정치 사회적으로 이용되거나 서로 이용한게 사실입니다. 이는 당시 교회에서 주도를 했든 하지 않았든 당시 사회 전반의 교회 영향력이 깊었기 때문에 교회와 연관이 없다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한 근거만 들어서 다른 의견을 무시해선 안됩니다. 위키디피아에서 나오는 내용은 이단심문 종교재판과 혼재 되어있다인데 이를 "상대종파를 마녀사냥으로 공격하는일은 없었다"로 해석하는건 좀 왜곡이라 봅니다. 어디까지나 중세시절 마녀사냥이 반대편 정치적 종교적 세력을 이들로 몰아 마법사 무당 점쟁이들 종교재판내지 이단과 연관되어있는게 맞고, 따로 마녀만 찾는 케이스도 있었으나 아예 없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8 Jibril_Lee2017-09-10 21:14:52

#7 당연히 이단심문이든 마녀사냥이든 교회와 연관이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마녀재판에 상대종파가 이단심문으로 고발되었는지 여부는 별개로 검토해야 합니다. zephyrus님께서는 한쪽 근거만 듣고 다른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충돌하는 두개의 의견 중 한쪽은 근거가 있고, 한쪽은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전자의 의견이 맞다고 잠정적으로 결론내고 서술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후자의 근거가 나온다면, 그때 서술하면 됩니다. '왜 한쪽 의견만 내세우는가'라는 관점이 '근거가 없는 주장'을 옹호하는데 쓰인다면, 위키에 온갖 루머와 카더라를 서술할 구실을 줍니다.

따라서 저는 근거가 있는 의견이 근거가 없는 의견을 반박했을때, 전자의 관점에서 문서를 서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를 반박하려면 새로운 근거를 가져오면 그만입니다.

물론 나무위키는 위키백과보다는 '출처'에 있어서 조건이 널널합니다만, 의견 충돌이 있다면 당연히 근거가 있는 의견으로 서술해야 하지 않을까요?

#9 Jibril_Lee2017-09-10 21:16:58

말씀하신 위키백과의 경우, 구체적으로 무슨 서술이, 어떤 레퍼런스를 토대로 쓰였는지를 말씀해주시면 더 유익한 토론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10 zephyrus2017-09-10 21:28:16

온갖 루머와 카더라를 쓴적이 없음을 밝힙니다.

제가 참조한 레퍼런스는 몇몇 서적인데 확인해보니 IP 시절 까지 포함하면 1년도 전입니다. 기억을 살려보면. 폴 존슨의 기독교 역사, 브라이언 P 르박의 유럽의 마녀사냥. 이스마 엘보겐의 독일 유대인의 역사, 알리스터 맥그래스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에 대하여 등입니다. 어느 구절에서 어디서 나왔는지 밝히라면 그건 어렵겠죠.

다만 "따라서 저는 근거가 있는 의견이 근거가 없는 의견을 반박했을때, 전자의 관점에서 문서를 서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를 반박하려면 새로운 근거를 가져오면 그만입니다." 식의 주장은 상당히 유감입니다.
제가 볼때 제안자께선 근거로 삼은 레퍼런스 주장을 근거로 의견을 말하는데 근거의 레퍼런스와 주장과의 차이가 있어보입니다. 그리고 이미 레퍼런스나 위키상의 다른의견은 저도 충분히 제시했다고 봅니다.

#11 zephyrus2017-09-10 21:32:22

이미 토론 주제부터 '마녀사냥'과 '상대종파 박해'의 관련성으로 반쯤 결론 내리셨는데 무슨 유익이 있나 싶습니다.

#12 Jibril_Lee2017-09-10 21:58:43

#11 일반적으로 마녀사냥에 상대종파가 마술 혐의로 고발되지는 않았음을 분명히 하자는 것입니다.

#10 zephyrus님을 인격적으로 비방할 의도는 결코 없습니다만, 이 부분은 나중에 근거를 찾으시면 그떄 추가해주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인용한 레퍼런스와 저의 주장 사이에 zephyrus님이 우려하시는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앞뒤 문맥을 잘랐는지 우려를 하실 수 있기에, 조금 더 넓게 인용하겠습니다.


기독교 사회가 수용도, 용인도, 협상도 할 수 없었던 아웃사이더 부류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마녀였다. 특정한 사람들이 사악하고 파괴적인 목적을 위해 마력을 쓴다는 믿음은 여러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중세에 이런 믿음이 흔했다. 그러나 마녀라는 용어의 부정확한 대중적 쓰임새와 반대로, 유럽에서 마녀들을 대규모로 체포하고 처벌한 것은 '중세' 현상이 아니라 근대 초기의 일면이었다. 15세기 후반에 시작해 1560년경 이후 가속이 붙고 18세기 전반에 막을 내리기까지, 유럽에서 약 10만 명(대부분 여성)이 마녀술 죄목으로 고발당했다. 이 가운데 대략 4만 명이 사형에 처해졌는데, 이 수치는 같은 기간에 종교적 비정통 혐의로 처형된 이들의 수보다는 훨씬 많고, 살인죄나 중절도죄처럼 물증이 더 확실한 범죄를 저질러 사형당한 이들의 수보다는 훨씬 적다. 간혹 선정적으로 '유럽 마녀 열풍'이라고 부르는 현상과 종교개혁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양자의 연대는 얼추 들어맞느다. 다만 맹렬한 마녀 사냥은 종교개혁에 앞서 시작되었고, 실은 종교개혁의 첫 세대 동안 차츰 잦아들었다. 가톨릭교와 신교는 과격한 종교적 수사법을 곧잘 구사하면서도 좀처럼 서로를 마녀술 혐의로 고발하지 않았다. 마녀들의 주된 죄목과 종교개혁의 주요 논쟁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예전부터 마을 주민들은 반사회적인 늙은 여자들이 주술을 걸고 고약한 저주를 내린다고 항상 의심했지만, 공식 박해에 시동을 건 동력은 마녀들이 악마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악마의 명령에 따라 기독교 사회와 전쟁을 벌이는 대규모 배교자 군단이라는 의심을 굳혀간 신학자들의 확신이었다.
그렇지만 종교 분쟁이라느 배경이 없었다면 마녀 사냥은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또는 광포하지 않게 전개되었을 공산이 크다. 마녀를 가장 맹렬하게 박해한 1570~1630년은 신교 국가들과 가톨릭 국가들이 교파화되고 이데올로기 전쟁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진 기간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사회의 순도와 균일성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고조되어 가장 비정상적인 일탈자인 마녀를 탄압하는 조치로 표출되었는가 하면 악마의 권모술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종말론적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가톨릭교도들과 신교도들 중에 어느 쪽이 박해에 더 열을 올렸느냐는 것은 이견이 분분한 문제다. 박해자들 중에서도 최악은 대게 독일의 작은 영역을 통치한 가톨릭 주교들이었다. 일례로 뷔르츠부르크의 주교 율리우스 에히터 폰 메스펠브루니(Julius Echter von Mespelbrünn)은 가톨릭 개혁의 강경파로서 1616~1617년에 마녀를 300명 넘게 화형시켰다. 그러나 가톨릭 남유럽은 처형률이 가장 낮은 축에 들었고, 에스파냐 종교재판소는 로마 종교재판소와 마찬가지로 마녀들이 저지른다는 소행에 회의적이었다. 칼뱅의 제네바에서는 화형당한 마녀가 거의 없었고, 신교권 네덜란드와 칼뱅파 팔츠에서는 사실상 마녀 재판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다른 칼뱅파 지역들은 1660년대까지 계속하여 마녀를 가장 혹독하게 박해했다. 17세기 중반부터 전반적으로 마녀 재판이 줄어들었지만, 잉글랜드 이스트앵글리아에서 내전 막바지에, 루터파 스웨덴에서 1668~1647년에, 그리고 유명한 사례로서 미국으로 건너가 메사추세츠 주 세일럼에 정착한 청교도 공동체에서 1692년에 추악한 마녀 재판이 발생했다. 마녀 재판을 종식하는 데는 다수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다. 다양한 법률 체계들이 도입된 더욱 엄격한 증거 기준, 고문 제한, 과학적 회의주의, 비열한 마을 주민이 광분해서 제기하는 고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엘리트주의적 태도 등이 그런 요인들이었다. 그러나 더 넓게 보면 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들은 종교 전쟁의 종결과, 다원주의를 향해 절뚝거리며 나아간 발걸음이었다. 우럽 사회들이 실제 "타자들"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통합함에 따라 상상 속 타자들은 더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이것은 종교개혁이 엄밀하게 균일한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고 다른 무언가를 우연히 낳아주는 데 성공했음을 말해주는 또다른 증거다.

#13 zephyrus2017-09-10 22:08:43

그럼 이단 고발은 없었다만 쓰세요 다른 출처에는 버젓이 교회 종교재판 이단심문과 관련이 있다고 나오니까요.. 이미 본문과 토론 내용에서 제시했습니다.

약간 혼동을 하시는건데 출처로 계속 제시하시는 Peter Marshall 글에도 개신교-가톨릭간의 상호 마녀사냥에 대해서인것이지 마녀사냥이 당시와 교회와 관련없었다 주장하시는건 전형적인 출처 왜곡이라고 봅니다. 글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런식의 서술은 없고,
개신교-가톨릭간 마녀사냥이 없었으니 당시 교회나 종교와 관련이없었다고 주장하는건 대단히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14 82.124.27.1942017-09-10 22:08:59

한 사람이 외치면 무시를 받고, 백 사람이 외치면 조롱을 받고, 만 사람이 외치면 억압을 받는다. 하지만 수백만이 외치면 반드시 사람들이 외치는 대로 된다.

아직 안 된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지금 나무위키혁명본부와 함께해 주십시오.

한 사람이 외치면 무시를 받고, 백 사람이 외치면 조롱을 받고, 만 사람이 외치면 억압을 받는다. 하지만 수백만이 외치면 반드시 사람들이 외치는 대로 된다.

아직 안 된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지금 나무위키혁명본부와 함께해 주십시오.

한 사람이 외치면 무시를 받고, 백 사람이 외치면 조롱을 받고, 만 사람이 외치면 억압을 받는다. 하지만 수백만이 외치면 반드시 사람들이 외치는 대로 된다.

아직 안 된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지금 나무위키혁명본부와 함께해 주십시오.

한 사람이 외치면 무시를 받고, 백 사람이 외치면 조롱을 받고, 만 사람이 외치면 억압을 받는다. 하지만 수백만이 외치면 반드시 사람들이 외치는 대로 된다.

아직 안 된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지금 나무위키혁명본부와 함께해 주십시오.

한 사람이 외치면 무시를 받고, 백 사람이 외치면 조롱을 받고, 만 사람이 외치면 억압을 받는다. 하지만 수백만이 외치면 반드시 사람들이 외치는 대로 된다.

아직 안 된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지금 나무위키혁명본부와 함께해 주십시오.

#15 zephyrus2017-09-10 22:12:37

그럼 "개신교-가톨릭 사이의 이단 고발로 인한 마녀사냥은 없었다만 쓰세요" 로 수정합니다.

#16 Jibril_Lee2017-09-10 22:18:55

#13 저는 마녀사냥이든 이단심문이든 '교회와 관련 없었다'라고 쓰지 않았고, 의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15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개신교-가톨릭 사이의 이단 고발로 인한 마녀사냥은 없었다"라고 주장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근거를 통해서 반박되는 서술, 이를테면

16세기부터 마녀재판은 기존의 방식과 달리 종교재판과 혼재되는 양상이 드러난다. 스페인에서 종교재판이 거의 마무리 되고(?) 16세기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극심한 종교 갈등으로 인해 아직 세속권력과 교회권력을 쥔 가톨릭 지역에서 비교적 소수파인 개신교(루터파, 칼뱅파, 재세례파)등을 처벌하는 용도로 이용되는데 역시 종교갈등이 가장 극심한 독일 지역 특히 가톨릭 지역인 남독일과 스페인 지배하의 저지대와 프랑슈콩테 지역에서 성행했다.


같은 서술을 편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당연히 이단심문으로 서로 상대방 종파 고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인 '이단심문'이지 '마녀재판'이 아니고, 이단심문에 관한 것은 다른 문서에 적는게 가장 알맞을 것입니다. 혹은 '마녀재판은 아니고 이단심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전제하에, 당대 유럽의 교파화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적는게 좋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굵은색으로 표시한쪽이, 저와 zephyrus님이 타협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17 Jibril_Lee2017-09-10 22:41:18

제가 생각하는 해당 문구의 편집은 이렇습니다.

16세기부터 마녀재판은 기존의 방식과 달리 종교재판과 혼재되는 양상이 드러난다.

이 부분을

16세기부터 마녀사냥은 기존의 방식과 달리 종교재판의 형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분명히 하고

스페인에서 종교재판이 거의 마무리 되고(?) 16세기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극심한 종교 갈등으로 인해 아직 세속권력과 교회권력을 쥔 가톨릭 지역에서 비교적 소수파인 개신교(루터파, 칼뱅파, 재세례파)등을 처벌하는 용도로 이용되는데 역시 종교갈등이 가장 극심한 독일 지역 특히 가톨릭 지역인 남독일과 스페인 지배하의 저지대와 프랑슈콩테 지역에서 성행했다.


이 부분은

마녀사냥은 가톨릭권에서는 남독일, 개신교권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심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가톨릭권의 스페인, 개신교권의 잉글랜드에서는 상대종파 신자에 대한 박해가 있었다. 불행히도 네덜란드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모두가 상대방을 박해했다.


이렇게 고치면 될 것입니다.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상황은

루터가 속했던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수사 두 명이 브뤼셀에서 화형당한 1523년부터 17세기 중엽까지 서유럽에서 남녀 약 5000명이 종교적 믿음을 이유로 법적으로 처형되었다. 그들은 교회와 협력하는 국가 권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들 대다수는 특히 이 기간의 초기에 가톨릭 당국에 의해 처형되었다. 나중에 잉글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에서 신교도들은 가톨릭교도들, 특히 사제들을 사형에 처했다. 다만 신앙 때문에 고통받는 신교도들의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단'보다는 '반역죄'를 공식적인 처형 이유로 들곤 했다.

#18 Jibril_Lee2017-09-10 22:49:06

#17에 추가

특히나 합스부르크가의 펠리페 2세는 종교재판으롣 악명이 높았지만 마녀나 마법에도 관심이 많아 '"마법은 인류의 골치거리'''라는 선언으로 마녀사냥이 대폭 강화 되었다.

#19 zephyrus2017-09-11 21:52:44

좋습니다.

의견 보강은 나중에 근거를 갖춰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20 zephyrus2017-09-11 21:53:03

편집 방향에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이만

#21 Jibril_Lee2017-09-12 00:35:05

#20 그러면 토론종결하고, #16~#18에 맞추어 제가 편집하여도 될까요? 물론 기타등등은 zephyrus님께서 자유롭게 편집하시면 되고요.(저한테 막을 권한도 당연히 없지만요)

#22 Jibril_Lee2017-09-12 21:29:03

#20 일단 내일 21시 30분까지 대답이 없다면, 토론종결을 관리자분들께 요청하고 제가 편집하겠습니다.

#23 Jibril_Lee2017-09-13 22:55:45

생각해보니 제가 이의제기 기간을 설정하지 않았군요. 내일(14일) 23시까지 이의제기 받겠습니다. 발제안은 #16 #17 #18입니다.

#24 Jibril_Lee2017-09-14 01:45:03

ㄲㅇ

#25 Jibril_Lee2017-09-14 04:13:04

ㄲㅇ

#26 Jibril_Lee2017-09-14 19:18:30

ㄲㅇ

#27 Jibril_Lee2017-09-14 22:25:15

ㄲㅇ

#28 Jibril_Lee2017-09-14 23:44:05

ㄲㅇ

#29 Jibril_Lee2017-09-15 01:55:41

ㄲㅇ

#30 121.182.135.2342017-09-15 03:54:23

ㄲㅇ

#31 Jibril_Lee2017-09-15 21:28:48

토론 종결 요청하겠습니다.